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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인생 경영

기사입력 2020.09.15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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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환동 / 자유기고가.

    [공주일보] 미국 하버드대 교정을 거닐던 어떤 교수가 갑자기 쓰러졌다. 다행히 현장을 지나가던 사람들의 응급처치로 살아날 수 있었다.


    40년 넘게 교수로 재직하며 미국 경영학계의 전설로 불리던 '하워드 스티븐슨 교수'가 운명을 달리할 뻔했다.   
     
    “후회란 인생이 목표에 미달하거나 추구해 보지 못한 것이 있을 때만 하는 겁니다. 그렇지만 나는 여태까지 내 뜻대로 살았기 때문에, 내 인생에 후회는 없어요. 내 인생에게 미안할 시간을 만들면 안되지요.”  
     
    심장마비로 죽을뻔 했던 '하워드 스티븐슨 교수'의 말에는 삶의 지혜가 압축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제자인 '에릭 시노웨이'는 스승의 이러한 대답에 놀랐다. 어떻게 일말의 후회도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많은 명예와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도 후회할 수 밖에 없는 게 인생인데?  
     
    A는 대학을 졸업하고 중앙 부처 공무원이 되어 승승장구했다. 고위직으로 퇴직한 그는 여기저기 찾아 다니며 누가 봐도 그럴싸한 직함을 얻기 위해 매달렸다. 그러던 중, 어떻게 줄이 닿았는지, 지방의 어느 대학 초빙교수란 직함을 획득하였다.

    그가 하는 일이란 어쩌다 특강 형식으로 강의를 하는게 고작이다. A는 매월 많은 연금을 받고 재산도 수 십억원이 넘는데, 어릴 때 가난하게 자란 탓인지 지금도 결코 남에게 밥을 사는 일은 없다.  
     
    B는 부부교사로 정년퇴직했다. 매달 수령하는 연금만해도 수 백만원이 넘고, 모아둔 재산도 수 십 억원이 되기에 그만하면 여생을 풍족하게 살 수 있다. 자식들은 모두 출가하여 잘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돈 버는 것 만큼 즐거운 일은 없다며 이것저것 돈벌이를 나서고 있다. B는 아직까지 해외여행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C는 칠십세로 학력이 국졸이다. 아주 가난하여 국민학교를 마치자마자 고모부가 운영하는 자전거포에 들어가 밥을 얻어 먹으며 기술을 익혔다. 그는 평생 자전거를 수리하고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의 재산은 넓직한 고급 아파트와 빌딩, 토지 등 백 억원에 가깝다.

    C의 달력에는 토요일과 일요일이 없고 공휴일도 없었다. 그저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다. 제주도에 가본 적도 없고 비행기를 타본 적도 없었다. 그런 C는 지금 심각한 암에 걸려 고통 속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D는 일찌기 남편이 죽었으나 재혼도 하지 않고 아들과 살았다. 국퇴 학력이 전부인 D는 많은 고생을 하며 아들을 키워냈다. 그동안 먹을것 입을것 줄여가며 행상을 해서 모은 돈이 수 백 억원이 되었다. 그러나 D는 평생 자신을 위해 돈을 쓰는 일은 거의 없었다. 아파도 병원에 가는 일이 없었다. 그러다 병이 들어 문밖 출입도 못하며 고생하던 D는 전재산을 모 대학에 기증하고, 팔십살도 되기 전에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다.  
     
    E는 학력이나 경력 그리고 실력이 특별한 사람도 아니었는데, 어찌 어찌하여 의원(議員)이 되었다. 재선까지 되었지만 그는 있는듯 없는듯 의원 생활을 했다. 그러던 어느날 모 여성이 E에게서 수년간 성폭행을 당했다며 증거를 들이대고 폭로했다.

    전국의 언론들은 일제히 대서특필, 난리를 불렀다. E에게는 아내와 자식이 있는 가장이었고 부모와 형제 그리고 장인과 장모까지 생존해 있다. 이 뉴스가 나오자마자 E는 슬그머니 집을 나와 투신 자살했다. 살인을 한 것이다. E의 나이는 50살을 조금 넘겼을 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기에 죽음처럼 공평한 것이 없다고 한다. 인생은 짧고 늘 죽음의 언저리에 서 있는 것이다. 나를 위하여, 나의 육신을 위하여, 나의 정신을 위하여, 어떻게 나의 인생을 경영해야 좋을까?  
     
    내가 아는 F는 반년 전 암으로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그는 자신을 위하여 가족을 위하여 늘 즐거움을 만들어 살았다. 쾌활한 성격에 친구들과 선후배들과도 잘 어울렸다. 형제들과 우애가 좋았고, 무슨일이 있으면 발 벗고 나서 집안일에 앞장섰다. 효도와 인간의 도리를 다하며 살았다고 볼 수 있다. 취미생활도 여행도 운동도 독서도 자연스럽게 즐기던 사람이었다. 
     
    F는 평소 말하기를, '잘 산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며 사는 것이다. 돈을 움켜쥐기 보다는 돈을 써서 경제가 돌아가게 만드는 것이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역할이다.' 라고 말했다. 
     
    F는 갑자기 닥친 죽음 앞에서도 차분히 마지막을 준비했다. 남겨진 가족을 위해 재산을 정리해 자식들에게 나눠주었다. 집도 조그마한 곳으로 옮겼다. 그리고 자식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죽음은 인생의 마지막 과정이다. 무서워할 것이 없다. 나는 이럴 때를 위하여 준비를 했다. 병원 비용, 장례 비용을 마련해놨다. 그러니 내 걱정은 하지 말아라." 그리곤 F는 1인 병실에 입원했다. 자신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거니와 가족들과 조용히 있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F는 가족에게 작별인사를 하며 이런 당부를 남겼다. "얘들아, 아버지가 죽으면 하늘에 있다. 너희들 잘되라고 하늘에서 기도할 테니, 힘들 때는 하늘을 보면서 힘을 내라." F는 자식들에게 마지막까지 존경스러운 모습으로 살다갔다.  
     
    그렇다. 내 인생은 내가 설계해서 내가 만드는 것이다. 착하게 성실하게 너그럽게 자연스럽게 살면 되는 것이다. 또한 마치 지구상에 나 혼자 사는 것처럼 자유를 느끼면서 그리고 나를 사랑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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